개인/가족 이야기

아버지의 기억(채록2)

청풍헌 2013. 4. 5. 23:13

충렬사나 문화원에 출입 합니까?

 

나이가 많아 아무데도 안갈란다.

4명이서 만나 모임을 했는데 두명은 요양원에 가버리고 나 혼자 남았다.

그러하니 어디로 가겠나?새로 몇명이 모이는데 보름마다 한번씩 모여 점심을 먹고 다방에서 차도 마시고 한다.

한 3만원 든다.서교장도 요양원으로 가버리고 나 혼자 남았다.중앙 정보부 사람도 요양원에 갔다.

중앙정보부에 있었던 사람은 한번 내려오면 서장이 마중 나왔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권력이 어마어마 했었다.

사등면장 하던 김동식이 강백열이 간첩 사건때 취조하여 맞아 죽었다.

영재저거 아부지다.지금도 성포 농협뒤에 가면 간첩침투 장소라고붙어있다.

면장이 잡혀가서 맞아서 죽었다.

                                                                        2013.29. 동광식당에서 채록

 

 

충무 집안의 산소에 대하여

 

시청에 찾아가서 산소 남은 부분을 사라고 하니 시청에 양보를 해주면 북신동 매립지 제일 좋은데로 대토로 하던지

고가로 팔아라 했는데 문중 산소로 함부로 할 수 없으니 의논 하겠다.

장대산소라고 시청 왼쪽에 있다.지금은 팔아먹고 그냥 있다. 산소는 파내어 이장을 했다.

우리는 흙만 파서 옮겼다.비석밑의 흙만 파서 이장을 했다.

 

묘각에 대하여

 

천석꾼의 집안에 돈이 많으니 산소를 치산을 잘 하여 괭장 했었다.

하지만 산복도로 들어가며 보상을 많이 받았는데 ...

사업을 한다고 몽땅 망해서 없어졌다.

통영집안은 완전히 망했다. 어디 갔는지 알수가 없다.

며느리와 손자만 있었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수가 없다.

 

시자흥자 할아버지 산소가 전남고흥에 있나요?

 

충의공 할아버지가 조카 준이를 전라도 고흥으로 피신 시켰다.

전라도 고흥에 종손이 있다.고흥으로 가라고 충의공 할아버지가 보냈다.

시흥 할아버지 비문을 세운다.고흥에서

식읍은 김해인데 분성이라고 했었다(김해땅을 )

고흥에는 종가가 있다.

 

김성한 외가가 옥산 이었다

옥산 윤씨,하산 제씨가 유명했다.

그집이 잘살았다.윤복구 큰집이었다.도가집 할매가 옥산 윤씨다.

엣날에는 잘 살았는데 손이 없어 대가 끊어질 판이다.

윤가들이 옥산에서 다 잘 살았다.

                                             2013.4.3 집에서 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