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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후

추용호선생님을 사랑하시는 분들께 삼가 아룁니다. 선생님의 백은 오늘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가셨습니다. 유족의 뜻에 따라 혼은 용화사 관음사에 모셨으며 49재에 다시 뵙기를 부탁하셨습니다. 감사의 뜻을 전할 길이 없다는 유족의 부탁에 이렇게 대신하여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 공방과 작품, 장비 등과의 행정적인 제반사항은 유족과 논의하여 순조롭기를 바랍니다. 추용호선생님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개인적인 바람을 말씀드리면 사자 명예와 유족의 아픔이 더하지 않도록 애도의 표현을 정중히 하시어 앞으로도 국가무형유산 소반장으로서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아픔과 슬픔이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들말의 페북글)

召天(소천)

추용호 장인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셨다.한산대첩 축제가 끝나고 8월 18일까지 보았다는 사람이 있었으나 19일(월)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23일(금) 가족이 발견했으니 8월 19~20일 정도에 돌아가셨으리라 생각된다. 국가무형유산 99호 통영 소반장 추용호 장인은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으신 분이다. 나와의 인연은 5년 전 통영의 무형유산을 정리하면서 맡은 부분이 통영 충렬사와 소목, 소반, 두석이었다.통영 충렬사는 공부를 더 확대하여 심원록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박사 과정에 공부하고 있다.소반은 추 선생님과 인터뷰를 수 차례 했으며 심지어 하룻밤 함께 묵은 적도 있다.과정도 험난했지만 마지막 가는 것도 험난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이 살피는 이 없이 혼자서 쓸쓸히 가셨다. 통영에는..

돌궐 유목제국사

돌궐 유목제국사정재훈돌궐은 미완의 유목 국가인 유연을 무너뜨리고 몽골 초원을 차지하여 그 존재를 역사상에 드러내었다. 그들은 아사나 집단이었다. 아사나 집단은 6세기초 유연의 지배를 받던 대장장이 집단에 불과했다. 고차와 유연의 상쟁으로 성장한 아사나는 고차와 유연을 격파하고 유목국가를 건설했다.(돌궐 제1제국, 552~630) 돌궐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이념을 완성하기 위하여 고차 신화의 ‘이리’ 신화소를 받아들여 자신의 신화로 삼아 이념적인 기초를 완성했다. 이로서 ‘투르크’라 불리는 존재가 단일체로서 역사적 계승 의식을 갖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아사나는 새롭게 장악한 유목 부락을 종속적인 관계로 복속시켜 그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함으로 체제를 안정시키고 발전을 도모했다. 이후 돌궐은 몽골 초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