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길 이야기

한산대첩길(사전답사)-당포 승첩길[3.7km 삼덕 삼거리-중화마을]

청풍헌 2014. 1. 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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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님 잘 계시온지?

한산대첩길을 만들고 있다는데 한번 가 보실랍니까?

 

지난 여름 어느날 한려투데이 홍경찬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한산대첩길을 만들고 있는데 시청 관광과 담당자와 사전 답사를 가자고 약속되어 걸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차를 타고 둘러보니 공사중이었다.

 

1월 2일 10시부터 걸었다.

첫 구간이 당포 승첩길이다.

 

당포 승첩길은 출발지가 두군데다.

산양농협 앞에서 당포성으로 출발지가 하나이며 당포마을에서 성안으로 출발하는 곳이 또 하나 있다.

왜 출발지를 두 곳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당포마을에서 출발했다.

당포마을은 삼덕항으로 지칭되어 마을 이름 찾기를 하여 수협 공판장 개장식과 더불어 어촌계에서 멋진 팻말을 세웠다.

당포마을 이라는 옛이름을 찾았다.

당포승첩길에 당포대첩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성의 유래와 임진장초에 기록된 당포대첩을 알릴 필요가 있다. 

▲되찾은 당포항

 

입구는 당포항 마을 표석 건너편이다.

초입에 그려진 조선수군은 만화 케릭터 수준!

강아지와 동급으로 희화화 시켜 놓았다.

와카자카의 왜군을 물리치러 가는 비장한 결의에 찬 수군은 어디가고 동네 처자와 연애나 하는 한가로운 케릭터가 왠말인가?

 

그래도 몇몇 그림은 따뜻했다.

시멘트 벽에 그려진 개나리와 민들레는 동피랑 민들레 보다는 낫다.

▲강아지와 동급인 조선수군

 

 

 

 

 

▲개나리와 물메기는묘한 조화를 이룬다.

▲민들레 홀씨되어~~~~~~~~~~

 

성안에는 아직 우물이 존재 한다.

돌담이 정겹게 쌓인 곳에 우물이 있다.

그곳에는 아직도 먹을 만한 물이 나온다.

▲우물1

 

▲우물2

 

 

당포성은 조선왕조실록의 세종20년(1438) 4월 17일자에

["경상도의 노량을 평산포라 고쳐 부르고 번계樊溪를 당포唐浦라 고쳐 부르게 하옵소서"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라고 나오며

 동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진주목 고성현편에

"당포는 현 남쪽의 47리에 있으며 번계만호의 병선이 여기로 옮겼다.번계는 본디 현 서쪽 33리에 있다"

 

이후 성종 21년(1490) 8월 29일자 두번째 기사에

이달에 경상도에 부산포성을 쌓았으니,둘레가 2천 26척이고 옥포성은 둘레가 1천 74척이며 당포성은 둘레가 1천 4백 45척이고 가배량성은 둘레가 8백83척인데 모두 높이가 13척이었다.

 

▲북원된 성벽

▲언제봐도 아름다운 곳

▲그림같은 중화항

▲임진장초에 기록된 당포파왜병장 내용

▲성벽을 내려와 개인 산소를 지나야 하는데 이렇게 철조망이...(어찌 할란가?)

▲한창 공사중인 인부들(물어보니 진주에서 왔다고 함)

 

▲야자수 껍데기로 엮은 폭 1m의 덮개

▲두줄, 또는 한줄로 깔았다.(good!)

▲멍게 채묘용 팜사를 굵게 꼬아 만든 줄

▲임진장초의 견내량파왜병장 내용

▲목동 김천손?

 

▲중화마을의 빨래터(이도 족욕탕으로 잘 활용을 하면 좋으련만...)

 

▲겨울에 핀다고 동백이라 했는가?그럼 봄에 피면 춘백인가?

 

▲마을을 가로질러 오르면 나타나는 전망대

▲남천이 많아서 <남천재>라고

▲여기도 빨래터가...

▲길가에 세워진 스템프 박스

 

한산대첩길 1코스인 당포승첩길을 걸었다.

출발지가 두곳이라 헷갈리며, 벽화는 상황과 맞지 않았다.

초입과 갈림길 부분에 안내 표지판이 필요하다.

 

당포성을 관통하여 중화동으로 넘어가는 산길은 조망이 꽤 좋았다.

길에서 보던 바다와 마을 위에서 보는 바다 풍경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2014.1.2